2025.03.17.
헝가리에서 알게 된 한 인연이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먼저 떠나지 않으면 계속 사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 살이의 숙명이다.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나도 쉽게 감정이 상하고 예민한 성격에 누군가에게 이걸 말해야 풀리는 성격이라 이해하려고 해도... 진짜 가끔은 너무너무 힘들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감정이 태도가 되는 사람으로 보일까?
2025.03.18
1년에 한 번 있는 대형쓰레기 버리는 날이었다. 진짜 무슨 전쟁 난 것 마냥 길 바닥에 이렇게 쓰레기들이 나와 있는데 보면 대형 가구부터 옷가지까지...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와있다. 주말엔 집시들이 구역 나누기 하는 것도 봄. 거기서 쓸만한 것, 돈 될만한 것은 쓸어가려고 하기 때문.
일주일에 한번 하는 저녁 반 헝가리어 수업을 발견해서 충동적으로 등록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어학원에서 레벨 테스트용 문제를 보내줘서 풀어 보냈더니 내 수준이 수업에 비해 너무 낮단다… 세상에 충격의 도가니. 나 그래도 헝가리 4년 살았는데. 남편이 헝가리 사람인데.(? 아무 상관없음.) 과거형을 배우긴 했는데 과거형은 잘 모르겠다고 너무 솔직하게 적었던 게 탈이었다. (1인칭 밖에 모름.)그래서 수업 시작 전까지 공부하겠다고 트라이얼이라도 갈 수 있을까 물어보았다.
저녁은 친구를 만나 말로만 듣던 부산 횟집에 갔다. 참치회와 짬뽕탕. 음식은 맛있었고 정말 오랜만에 소주를 곁들인 진솔한 대화가 좋았다.
일행을 배웅하고 지하철을 타러 걸어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왜 이상한가 했더니 저녁이 아닌 밤이 가까운 시간에 집에 가는 게 꽤나 오랜만이어서였던 거 같다. 살짝 무서워져서 택시 탈까하다가… 좀 걸어야지 싶어 지하철 내려가는데 노상방뇨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제 이 정도는 충격도 아니지만 요새 가면 갈수록 이상한 사람이 더 많아지는 거 같다. 아시아 여자로 유럽 짬도 10년이 다되어 가니 밖에 다닐 때 당연하게 주변 경계를 하게 되는데 요즘엔 내 레이더에 경계대상들이 너무 많이 잡히는 것 같아 조금 피곤하다. 아 유럽에서 아시아 여자로 사는 건 정말 피곤하단 말이지.
2025.03.19
출근해서 동료한테 헝가리어 레벨 안 맞아서 리젝 당한 썰...푸는데 갑자기 열이 받았다. 와중에 어학원에서 트라이얼이라도 참석하고 싶다는 메일에 답이 왔는데...
OK, try it please, however I think the course is all in all above your level. But to try makes no harm.
(좋아요, 해 보세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코스가 전반적으로 당신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아요. 하지만 시도해 보는 건 해가 되지 않아요.)
라고 답이 왔다.
몇번을 다시 읽어도 꽤나 기분이 나쁜 답장. 제발 받아 달라고 메일 보낼 땐 언제고 갑자기 이 어학원 가기 싫어짐. 아직 트라이얼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때까지 혼자 공부를 해보고 혼자 해도 되겠다 싶으면 안 가려고 한다.
이번 주는 이래저래 약속이 가득이다. 세상에 구룡식당이라는 중식당에 갔는데 내 입맛에 딱이었다. 부다페스트에 꿔바로우 맛집은 없다 생각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맛집이 여기 있었네. 그리고 어언 10년 전 중국에서 먹고 반한 중국식 그린빈 볶음…! 여기가 맛집이구나…! 사진에 없는 탄탄면이랑 가지 요리도 먹었는데 너무 맛있고🥹 이제 중식은 여기 정착이다.
나오면서 포춘 쿠키를 받았는데 Don't do everything alone. 오호라. 저녁은 너무 좋았다. 내가 남편 처돌이라서 자연스럽게 남편이야기를 꼭하게 되는데 왜인지 온전히 '나'에 관한 이야기만 한 저녁이었다.
2025.03.20
나는 한국인과 유럽인의 직업 윤리 차이를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그래도 지킬 건 지키자 좀... 진짜 벌어먹고사는 게 뭔지. 어휴 사회생활 힘들다.
저녁은 또 외식. 거의 집에서 밥먹는 날이 없이 외식 다음 외식이었던 주. 친구랑 중식/일식 all you can eat에 갔는데 헉 양꼬치가 너무 맛있었다. 이 외에도 이것저것 먹었는데 양꼬치랑 오징어 꼬치가 제일 맛있었다. 인당 만포에 아주 배부르게 먹음. 배가 너무 불러서 걸어서 머르깃 다리 건너 귀가. 씻고 기절했다.
2025.03.21
요즘 단골된 카페에 출근 전 들러 테이크 아웃했는데 요로코롬 귀여운 꿀벌이. Legyen szép napod!, 좋은 하루 되라고 적혀 있었다. 드디어 헝가리 신분증을 받았다. 이제야 수십 년간 체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이사하면 주소카드 재발급, 중간에 신분증도 만료되면 갱신해야 하지만 간단한 발급, 갱신 절차이지 체류증처럼 심사가 들어가는 부분은 아니니까.
아 여유로운 금요일 보내고 빠르게 쇼핑센터 들렀다 집에 가서 짐싸려고 했는데 엄청 늦었다. 며칠 빌 집을 정리도 해야 해서 열두 시나 되어서 잠들었다.
2025.03.22
3년 만에 런던 여행을 다녀왔다.
과감하게 주요 관광지는 거의 안갔다. 빅벤이랑 런던아이가 뭐예요? ㅋㅋㅋ 3시간 자고 좀비처럼 비행기에서 졸다가 아침에 런던 도착, 체크인하고 강행군 시작. 말리본 보고 싶어서 말리본에 숙소 잡았는데 결국 말리본은 제대로 못다녔다…^^ 대신 살 때도 잘 안 갔던 사우스 켄싱턴, 첼시 쪽을 돌아봤는데 너무 좋았다. 스콘부터 조지고 발가는 대로 걸어 다님.
지방에 있다가 서울 올라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격은 차치하고서라도 옷이든 식료품이든 헝가리랑 비교했을 때 이 정도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해롯이랑 포트넘, 유니클로에서 가산 탕진하고 예전 플랏메이트 언니를 만나러 갔다. 이스트 런던의 한 펍에서 피시앤칩스와 폭찹을 먹었는데 너무 런던 같고. 언니 집에 가서 한잔 더 했는데 어쩜, 방 세 개짜리 짜리 플랏 같이 렌트해서 방 쪼개 살던 우리가 이젠 한 플랏 전체를 렌트하고 점점 더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우리 잘 살고 있구나.
2025.03.23
리치먼드 공원 가려다가 실패. 런던 교통 진짜 절레절레.
중도 포기한 곳에서 나와 무작정 걷다 무작정 보이는 곳에 가서 밥 먹고 또 걸었다. 진짜 진짜 좋았다. V&A를 처음으로 갔는데 이렇게 좋은 델 왜 지금까지 안 왔나 싶다. 배터시 브리지를 지나 배터시 파크도 가고 배터시 발전소 쇼핑센터도 감. 친구가 연락 와서 대체 거기서 뭐 하냐고 ㅋㅋㅋㅋ 왜 갔냐고 ㅋㅋㅋㅋ 놀러 갔지.
친구 만나서 월레스 컬렉션을 보러 갔다. 몇 년이고 기억에 남은 그림을 소중한 친구와 함께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셀프리지 식품관도 구경했는데 전 날이랑 똑같이 헝가리에서 온 나는 백화점 식품관은 비싸지만 그래도 돈 있으면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라 역시 런던은 런던이다. 돈 있는 동네 최고! 부럽다!라고 생각했지만 파리 출신 프렌치 친구는 백화점 식품관이 무슨 프랑스 일반 마트 수준이라고 ㅋㅋㅋㅋ 그래 너 좋겠다..
그리고 저녁은 내가 다시 가고 싶었던 타이 식당에 갔다. 처칠 암 팟키마오 매콤 존맛! 펍에서 기네스 두 잔 하면서 친구와 회포를 풀었다. 너무 재밌었다. 다음 날 중요한 일이 있어 너무 늦지 않게 호텔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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