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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라이프/부다페스트 일상

주간 일기 : 5천포의 행복과 마카롱

by _oneday_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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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7

점심에 남편이 회사로 와서 같이 점심도 먹고 커피도 한잔 했다. 행복해.

지난 몇 달간 돈 나갈 일이 많긴 했지만 최근 내 씀씀이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고 지출을 통제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예전에 친구가 하루 5천 포 쓰기 도전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나도 하루 5천 포 쓰기 해야지! 하자마자 만포 씀. 에라. 첫날부터 실패다.


2025.04.08

일찍 일어나서 아침도 챙겨먹고 출근했다.
점심도 먹고 간식으로 딸기도 먹고 헝어 수업 전에 치즈버거도 먹고 저녁은 친구 만나서 또 먹고 열심히 먹은 날.

헝가리어 수업이 너무 너무 어려웠다. 일주일 간 적어도 하루 한 시간은 공부해서 자신감이 좀 올랐는데 그걸론 최소 나보다 몇 개월은 더 공부했을 학우들을 따라가질 리가 없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2025.04.09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일주일 중에 처음이자 유일하게 0포 지출! 돈을 안쓰니까 쓸게 없는 건가.


2025.04.10.

전날 0포 지출 달성하기 무섭게 돈 쓴 날... 근데 염색 7개월 버텼으면 오래 버틴 거 아닌가... 매번 뿌염 건너 뛰고 얼룩이 덜룩이로 가는데 온리아 신비쌤이 염색을 너무 잘 해주셔서 염색은 여기로 고정이다.

기분 좋게 머리하고 오랜만에 블루 아고리 가서 피타를 먹었다. 초반에 헝가리 와서 블루아고리 자주 시켜 먹기도 하고 자주 갔는데 언젠가부터 안 갔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었다.

집 와서 후다닥 짐 싸고 잠자리에 들었다. 


2025.04.11

퇴근 후 폴란드 행 버스를 탔다.
주말 부부를 한지도 7개월 차, 벌써 아홉 번째 폴란드행이다. 남편은 그 두 배 이상 이 길을 오갔다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매주 남편을 다시 만날 때 그 설렘을 대체 할 수 있는 건 없다. 만나자마자 조잘조잘 이야기도 하고 밀린 시리즈도 같이 보고 주말은 너무 짧다.


2025.04.12

약속 대로 재래시장에 다녀왔다. 문 닫혔을 때는 없었던 노점 상들이 시장 근처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신선한 과일 채소 구경하고 아스파라거스를 샀다. 여기도 명이나물을 잔뜩 파는 게 신기했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먹거리도 많아서 생면 파스타에 굴까지 먹었다. 남편이 말릴 줄 알았는데 파스타 맛있겠다~ 하니 먹자 하고, 가기 전에 여기 굴판다고 신났다가 가격 보고 괜찮다고 했는데(굴 하나에 7천 원이 넘었다.) 먹으라고 부추겨 주었다. 내 인생 목표가 유럽에서 굴 맘껏 먹는 삶이다ㅋㅋㅋ 지금은 맘껏은 못 먹지만 때때로 두 개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삶ㅋㅋㅋㅋ

시장에서 산 프랑스 와인과 세게드산 살라미를 가지고 오후엔 남편 친구 홈 파티에 갔다.

 

이 날 다시 한번 느꼈던 건, 유럽에서는 십 대 때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는 덕분에 성인이 됐을 때 이미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 잘하는지를 알고 진로를 정하고 그에 따라 사회 진출도 빠르고 인생에서 원하는 것과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20대의 전부, 적어도 2/3을 나를 알아가는데 썼는데 20대 중반에 이미 자신을 알고 취향이 있고 명확한 커리어와 방향성이 있는 친구들을 보며... 남들이 하라는 대로 흘려 보냈던 시간들이 생각나 슬프면서도 부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유익한 시간이긴 했지만 솔직히 재미는 좀 없었다. 마치 네시간짜리 '유럽의 문화와 생활' 같은 토론 교양 수업 갔다 온 듯 한... 느낌이었는데 오는 길에 남편이 먼저 지루했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오는 길에 편의점 들러서 녹차 모찌 사 먹었는데 찰떡 아이스 맛...! 집에 와서는 헝가리어 숙제를 했다. 나 공부 왜 이렇게 열심히 함...? 


2025.04.13.

집에만 있기로 했는데 크로아상이 먹고 싶어서 결국 뛰쳐나온 나와 혼자 가도 되는데 또 쭐래쭐래 따라온 남편. 연애 초반에는 극강의 효율을 따지며 떨어져서 각자 하고 싶은 일 하거나 볼일 보거나 했는데 점점 더 안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주말부부 하면서 더더욱.
 
커피 마시면서 마카롱도 하나 먹었는데 학생 때 가십걸을 보며 대체 저 마카롱이라는 디저트는 무슨 맛일까 얼마나 궁금하던지. 당시 어렵게 한국에서 마카롱을 구해 먹어 봤던 기억, 파리에 가서 라뒤레 마카롱을 먹고 감탄했던 기억도. 그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12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로마 위드 러브'를 봤던 기억이 났다. 영화 속 로마가 아름답고 매력 있어 인생에 한 번이라도 로마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같이 영화 본 사람이 내 인생에 로마 갈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사람이 하나 3천 원 했던 마카롱을 먹는 나를 보며 탐탁지 않아 했었는데... 이제 파리에 가서 마카롱 먹는 것과 로마에 가는 것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으니 인생이란 참 재밌다. 
 
집에 와서 새로 나온 블랙미러 시즌을 정주행하고 스테이크를 구웠다. 5천포의 행복은 대 실패했지만 굴과 마카롱이 있는 행복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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