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4
밸런타인데이이자 내 생일인 2월 14일.
생일에 휴가 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겸사겸사 겨울 스키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스키 여행의 첫날이었던 내 생일.
우리가 살고 있는 부다페스트에서 아침부터 렌터카, 스키 픽업하고 6시간 걸려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생일인데 생일 케이크도 없다고 오는 길에 투덜거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일 케이크는 정말 없었다.
생일 케이크를 준비할 여유가 어디 있었겠냐며...
(아니 전 날 사서 오스트리아 싸들고 왔어도 되는 거잖아)
여하튼 이렇게 센스가 부족한 남자다.
그래도 며칠 전 밸런타인데이라고 초콜릿과 샴페인, 장미 꽃다발을 사 왔었는데 초콜릿과 샴페인은 챙겨 왔더라.
(케이크도 챙기지 그랬어)
저녁은 내가 훈제 연어 크림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먹자니까 숙소에 있는 초를 보며 갑자기 초를 켜고 싶단다.
둘 다 흡연자도 아니라 라이터도 없고 숙소 주방도 인덕션인데 갑자기 웬 초를 왜 키고 싶어 하는지 ... 조금 답답했다.
여기저기 뒤적거려보니 성냥이 나와 초로 불을 붙이고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최대한 로맨틱한 무드를 잡으려고 했던 거 같다.
웬만하면 내 파스타는 맛없는 일이 없는데... 어째서인지 파스타가 소태였다...
아쉬운 대로 소태 파스타로 배를 채우고 샴페인을 마시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생일 선물 서프라이즈 받을 준비 됐냐고...
참 남자친구 답다고 생각하고
서프라이즈는 네가 나를 놀라게 해야 서프라이즈지.
서프라이즈를 서프라이즈라고 하고 하는 게 어딨어!
이따가 다시 날 서프라이즈 하게 해 봐.
하고 답했다.
알겠다 하고 또 평소처럼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러다 (평소처럼) 직장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뭔가 내 말에 집중은 안 하고 자꾸 헤실헤실 웃는 거다.
그래서 뭐야..? 왜 그래?? 하니 아냐 아냐, 계속 말해.
하며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줬다. 전혀 안 듣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가 끝나자 정말 신난 표정으로 이제 선물할까????
... 나 참 정말 서프라이즈가 무엇인지 모르시는군요.
포기하고 그래 하자 했더니 갑자기 발코니로 나가란다.
예. 여기 영하 오스트리아 산속인데요....???
그래서 그냥 현관에서 안 보고 숨어 있으면 안 돼? 하니 안된단다 발코니가 로맨틱하니 발코니로 나가란다.
추운데?? 하니 외투 입고 나가란다.
그렇게 생일에 발코니 쫓겨남...
기대도 안 했지만 발코니는 휑했다.
그래도 맑은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힌 풍경만큼은 정말 예뻤다.
겨울이면 보이는 오리온자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밤하늘을 담아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동안 남자친구는 숙소 안에서 열심히 뽀시락 거리고 있었다.
아니 뭘 준비했길래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지..... 하며 속으로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뒤에서 불렀다.
Now you can turn!(이제 돌아봐도 돼)
(야간 모드로 사진 찍는 중이라 움직이면 안 됨) ok ok. wait...(아니 잠만)
Jisuuuu
사진을 찍고 뒤를 돌자 남자친구가 반지를 들고 어느 때보다 신나고 행복한 표정으로 남자친구가 말했다.
I'm so excited!
Will you marry me, oo?
나 너무 신나! 나랑 결혼해 줄래, oo아?
세상에
정말 수도 없이 상상하고 오랫동안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엄청난 delulu인 나는 이 순간을 수도 없이 상상해 왔고 프러포즈를 받으면 할 말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는데 막상 프러포즈를 받으니 말문이 턱 막히고 다리에는 힘이 풀리고 왜인지 눈물이 났다.
남자친구는 여전히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해맑은 표정으로 So? 하고 물었고
나는 눈물을 흘리며 Yes라고 하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덧붙였다.
언젠가 프로포즈를 받으면 꼭 하리라 마음먹었던 오만과 편견 제인의 대사.
A thousand times yes!
환희에 찬 포옹과 키스를 나누고 남자친구는 어서 반지를 껴보자며 정말 신나 하며 말했다.
We are engaged! I'm so excited, we are getting married!
우리 약혼했어! 너무 신난다, 우리가 결혼을 한다니!
깔끔하고 클래식한 다이아 반지를 받았다.
딱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야.
발음도 어려운 오스트리아 시골 동네 투라헤 호헤(Turracher Höhe)에서 받은 프러포즈.
오히려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더니 다웠고 진심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만난 지 만 2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된 우리.
사실 나는 만난 지 1년 정도 됐을 때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자녀 계획, 미래 계획 등을 이야기해 왔고 모든 부분에서 생각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번 크리스마스, 새해 전야, 생일 등 특별한 날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당연히 여자가 먼저 할 수 있지만 나에 비해 남자친구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꾹꾹 참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지르고 싶었다.
지난 크라스마스도 새해 전야도 그냥 보내고 이제 생일 아니면 당분간 특별한 날도 없겠구나, 이번에도 기대 말아야지 했는데 마음 한편 간직하고 있던 소망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결혼식 날짜와 준비를 마쳐놓고 하기도 하는 한국의 프러포즈와 달리 유럽에서는 프러포즈가 결혼 준비의 시작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프러포즈를 기점으로 약혼(Engagement) 상태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때도 Boyfriend, Girlfriend보다는 Fiancé(약혼한 남자) or fiancée(약혼한 여자)라고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게 된다.
양가 가족들에게도 알렸는데 다들 너무 기뻐해주었다.
자, 이제 결혼은 언제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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