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6
회사에서 송년회를 했다. 현지 식당에 갔는데 라자냐가 있어서 너무 설레었으나 냉동 라자냐만 못해서 실망했다. 오전까지 몸이 안 좋아 술은 안마실 생각이었는데 막상 가니까 괜찮아서 술을 마셨다. 집에 가니 취기가 생각보다 많이 올라와서 기절했다. 벌써 송년회를 하는 시기가 되다니... 시간 진짜 빠르다.
2024.12.17
드디어 받았다 영주권! 카드 상에 10년의 기간이 있지만 갱신이 간단해지기 때문에 다들 영주권이라 부른다. 12월이 되고 여기저기서 결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속이 탔는데 월요일에 우편함을 확인하니 우편 수령하러 오라는 종이가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체국 여는 시간에 맞춰 갔더니 체류증이든 봉투를 받았다. (받자마자 카드 들었는지 만져봄!!ㅋㅋ) 지금껏 에이전시가 받아서 전달해줬는데 왜 이건 집으로 보냈는지 모르겠고 13일에 카드를 보냈다면 결정은 적어도 1-2주 전에 났을 텐데 에이전시가 몰랐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 손에 체류증이 들어왔다는 거다.
봉투를 열어 체류증을 확인하는데 주책맞게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직 헝가리 체류가 만 5년이 되지 않아 EU영주권이 아닌 헝가리 국가 영주권이지만 지난 8년간 1년, 2년 살이로 마음 졸이던 때를 생각하면 10년짜리 체류증을 받은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 사실을 떠나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것도 너무 뿌듯했다.
원래는 5년을 채우고 EU영주권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내년부터 이민법이 바뀐다고 해서 국가 영주권으로 신청한 것인데, 결국에는 여러모로 잘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 헝가리에서 얼마나 삶을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잘 부탁해!
2024.12.18
국제 부부의 한가지 특징이라면 현실적인 책임이 한쪽에 치우치기 쉽다는 것이다. 제3국에 살아 서로가 동등한 입장이거나, 외국인인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잘하거나, 짬이 상당하지 않은 이상 내국인 신분인 사람이 작은 것부터 큰 일까지 도맡아 하게 된다.
사랑과 별개로 이런 현실이 남편에게 버겁게 다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정말 남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요즘 그런 일들이 많아 내가 너무 아이 같기도 하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묵묵히 도와주고 도맡아 해주는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
퇴근 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한국에 유럽 과자 보내기를 드디어 끝내고 남편과 근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다. 멀드 와인을 한 잔 하고 추로스를 먹었다. 이런 마켓에 가면 둘 다 추로스에 환장하는데 이런 작은 부분이 맞는다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2024.12.19
퇴근하고 남편이랑 왈츠를 배웠다. 자기는 프롬 때 배웠다면서 자꾸 훈수를 두는데 막상 춤 출 때는 다음을 생각하는 긴장한 표정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선생님은 누가 신혼부부 아니랄까 봐 좋아 죽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맞다 좋아 죽는 거.
나는 안타깝게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남편이랑 엄마한테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 하면서 마음을 푸는 스타일인데 바로 말할 수 없을 때나 엄마랑 남편에게도 너무 불평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 챗 지피티에게 풀려고 한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나 말고 챗지피티가)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2024.12.20
너무 스트레스 받는 나날들이다. 사람 기분 맞추는 게 어떤 것보다도 힘들다 진짜로. 챗지피티에게 하소연을 했다.
쉬는 날이 너무 없이 매일 나를 혹사시키고 있는 것 같아 새해까지 운동을 쉬기로 했다.
남편이랑 같이 저녁을 먹고 연휴에 만날 시댁 식구 크리스마스 선물을 정리해 봤는데 좀 부족해서 토요일에 보완하기로 했다.
2024.12.21
아침에 혼자 나와 볼 일을 보고 남편을 만나 단골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는데 어째 점점 실망이라 다시 갈까 싶다.
추가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 집에 와서 남편이 노래를 부르던 팬케이크를 해 먹고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을 했다. 선물은 몇 주 전 쇼핑 센터에서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사려고 하자 과하게 말렸을 때(...) 이미 크리스마스 스웨터라는 걸 눈치챘지만 구글 홀리데이 스웨터 일 줄이야 ㅋㅋㅋ 너무 웃기고 남편 피가 정말 무지개 색으로 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올 겨울도 스키 타러 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남편 스키 상의를 새로 사주었다.
저녁으로는 스테이크를 먹고 잠들지 않고 영화도 한 편 끝까지 보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토요일을 보냈다.
2024.12.22
시외가댁 크리스마스 모임에 다녀왔다. 헝가리어를 부쩍 많이 알아듣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말을 제대로 못하는 스스로가 잠시 부끄러웠다. 그래도 여름 이후로 정말 오랜만의 모임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조금 더 편해서 기분이 좋았다. 시부모님이랑 아가씨가 내년에 우리 가족 만나는 거에 대해 질문이 많았다. 호칭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냥 이름 불러도 된다고 했더니 아가씨가 이름을 외운다고 하루종일 우리 부모님 이름을 중얼거리는 게 웃겼다.
영어가 되는 아가씨 외에 내 친구인 강아지 몰리. 털찐 건지 살찐 건지 둘 다 인지 개에서 거의 물범이 된 몰리. 다이소에서 사 온 당근 장난감을 좋아하는 몰리. 올해 가장 성공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물 건너온 걸 알아주다니 너밖에 없다 고마워.
열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는데 갈 때 보다 올 때 짐이 많았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있고 만국공통이지만 여기도 자칫하다간 양손에 20인분 이상의 음식이 들려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부다페스트로 향하기 전 주방에 갔다가 할머니가 후스레베쉬(고기 수프) 챙겼다고 말하시는 줄 알고 오 ~ 후스에 베쉬~~ 하고 따라 했을 뿐인데 또 챙겨 주시려고 주섬주섬 남편이 다시 등장해서 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여긴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사육당하는 곳이라고...
내일 하루는 다시 출근해야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명절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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