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1.




휴가라서 크라쿠프에서 시작하는 일기.
오전에 남편이랑 볼일 보고 크로아상 먹고 싶어 찾아간 곳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먹었는데 그저 그랬다. 점심은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어 남편 회사에서 먹었는데 치킨 데리야끼라느니 중화풍 채소 볶음이라느니 되도 않는 아시안 음식 말고 그냥 유럽 음식 해주면 안되냐고 반찬 투정을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한국 회사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스파게티 이탈리아인한테 주면 혀를 깨물지도 모른다.
주말에 보고 망설이다 안 샀던 티 팟이 자꾸 생각나서 결국 다시 가서 샀다. 영국 시골 티룸에서 줄 것 같은 귀여운 티팟 세트. 밀크 저그도 사려다가 막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안샀다. 찾아보니 한국 백화점에도 들어가는 수제 폴란드 그릇 브랜드였다. 깨지지 않도록 뽁뽁이를 엄청 싸줬는데 아껴 놨다가 이사가면 거기서 써야지.
남편 집에 가서 쉬다가 헝가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하루 더 있어서 시간이 많은 줄 알았는데 또 그새 지나가 버렸다.
결국엔 내가 폴란드로 가는 것이 맞는 걸까? 이번에 크라쿠프에서 안 가본 동네들을 가게 됐는데 어디든 부다페스트랑 비교했을 때 깔끔하고 현대적이어서 놀라고 짜증이 났다. 요즘 유럽에서 폴란드와 스페인이 부상한다고 하던데 폴란드에 갈 때면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나라의 활력 같은,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유럽에 그런 나라들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못난 나는 왜 헝가리는 그러지 못하는가에 자꾸 생각이 미친다. 부부가 언제까지고 떨어져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헝가리도 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 난 더이상 다른 나라로 이사가고 싶지가 않다. 부다페스트가 좋다. 제발 계속 있게 해줘~!
2025.08.12.

다시 날이 덥다. 여긴 입추도 없나보다.
점심시간에 변호사에게 서류 전달을 하고 왔다. 헝가리에 계속 있고 싶다고 했지만 이럴 땐 정말 정털린다. 변호사가 일처리를 잘못해서 새로 서류를 해야 하는 상황. 지가 잘못해놓고 찾아오지는 못할 망정 왜 내가 가서 서류를 가져오고 서명하고 다시 가져다 드려야 하며, 내가 간다고 한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나가려고 이미 각 잡고 있었던 것 하며 이 변호사에게 내가 돈 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태만해도 되나. 게다가 새로 서류도 엉망이었는데, 영문 부분에 헝가리어가 들어가 있고 남편이 헝가리어 부분도 뭔가 분명하지 않다고 하는데... 실수한 게 처음도 아니고 어떻게 변호사가 된건지... 여러 사람 시간 낭비해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다. 그래 내 뒷담화를 먹고 오래오래 살으렴.
2025.08.13.
퇴근하고 중국 마트에서 마라탕 재료를 샀다. 두부 한모, 배추 한포기, 청경채 한포기, 팽이버섯 두봉지, 비빔면 한봉지, 숙주 한봉지, 냉동 우삼겹 두팩(이게 근데 좀 비쌈ㅋㅋ) 샀는데 만 사천포 지출... 집에서 해먹는 게 더 싼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먹을 땐 신나게 먹고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한 해리포터 정주행을 드디어 마치고 집을 정리했다. 남편이 오기 전날 집 정리를 하고 있으면 꼭 연애 할 때 생각난다.
2025.08.14.


엄마가 하는 가지반찬이 자꾸 생각나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사진 찍어서 보내줌...ㅠㅠ 어릴 땐 물컹물컹 이상하고 맛없다 생각했는데 사진만 봐도 고소한 엄마표 가지 반찬 향이 나는 거 같다.
저녁에 잔뜩 장을 봐서 채소 위주의 한국 밥상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이고 가지무침, 호박전, 배추무침해서 냠냠. 가지무침은 엄마가한 맛은 안났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요즘 거의 채식 중인 남편도 잘 먹었다.
2025.08.15.



퇴근하고 볼일 보고 오랜만에 두나판다에 갔다. 가는 길에 약을 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길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 그 옆에 갑자기 소변 보는 9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를 보고 멘붕이 와서 남편이랑 what's happening in this city..? 하고 두나판다 가는데 갑자기 차 조수석에서 문 열고 뛰어 내리는 수녀님 보고...?..??? 대체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두나판다에 가서 아시아 식재료를 잔뜩 샀다. 유부초밥 키트를 팔길래 유부초밥만 들고 남편이 된장찌개 왕창 해달라 해서 한솥을 끓였다.
2025.08.16.



아침에 필라테스 갔다가 헬스까지 하고 귀가. 필라테스 수업 끝나고 웨이트 한다고 했더니 최근에 필라테스 시작한 동료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내가 필라테스를 잘 못하고 있는 걸까…? 게을러서 그렇지 가능은 한데 🤔 필라테스를 너무 설렁설렁하고 있나?
집에 와서 두나판다에서 산 고구마를 쪘다. 역시 이 맛이야 ! 유럽 고구마는 주황색에 밍밍하니 물고구마 맛이다. 남편에게 이것이 한국 고구마라며 한 껏 뽐을 냈다.
혼자서도 잘 해먹는 남편이지만 요즘 몸이 안좋아 더 신경 써주고 있다. 남편이 먹을 수 있는 것 중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있다. 나는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지만 식단 하는 남편 옆에서 먹는 건 좀 미안해서… (맘대로 먹으라고는 하지만) 나도 같이 건강하게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저녁엔 오랜만에 영화 데이트. 셀린 송 감독의 신작 머티리얼리스트를 봤다. 사랑과 돈의 상관관계에 생각해보고, 남편이랑 토론하고. 남편은 왜 남자 키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180넘는 사람이 말합니다.
늦은 저녁, 남편에겐 가지토마토 스튜를 해주고 나는 우삼겹 샤브를 먹었다. 이렇게 건강할 수가.
2025.08.17.



아침으로 감자빵에 딜크림치즈, 세미 드라이 토마토. 요즘 빠진 조합🤤 납복 끝물 열심히 즐기는 중.
오랜만에 시외가에 다녀왔다. 고개숙인 해바라기들. 어느새 여름이 끝나가는구나. 헝가리에서는 생일 지나고 축하하는 것도 괜찮은지 6월 중순에 있었던 남편 생일을 두 달이나 지나 축하함… 처음에 케이크보고 (누구 생일이야..) 속삭였더니 남편 왈 : 내 생일이잖아~ (아니 두 달 전이었잖아요..😳) 가서 하는 일이라곤 먹고 먹고 먹고…이야기하다가 졸다가 속으로 나도 가족 보고 싶당… 생각하다가 온다. 커피, 술 끊은지 4주차 성공적! 술은 자주 마시지 않았으니 변화가 있을 거란 생각을 안했는데 놀랍게도 정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곧 결혼식 참석이 있어서 술은 조금 마실 것 같은데 커피는 재중독 위험이 있어서 디카페인이 아니면 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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