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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라이프/부다페스트 일상

주간 일기 : 12월의 첫째 주

by _oneday_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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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2
 
몸살 기운 가득한 몸을 이끌고 크라쿠프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장장 6시간 반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버스 타기 직전에 이부프로펜을 복용하고 탔더니 뜨뜻한 버스에서 땀을 쫙 빼게 되는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지만 회복 모드에 진입한 것 같아 집에 가서 씻고 출근을 했다. 퇴근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약빨이 떨어져서 헤롱헤롱했지만 입맛이 돌아온 것을 보니 회복 모드가 확실했다. 오후 내내 마라탕 어떻게 해먹을지 생각했으니까.

집에 와서 옷도 안 갈아입고 만든 마라탕... 소스가 3-4인분이라고 해서 진짜 4인분을 만들어 버렸다. 입맛이 변하는 건가 예전만큼 탄수화물이 맛있지 않은데 줄이지 못하는 걸 보면 중독인가 싶다. 소화시킬 겸 양심상 집안일을 좀 하고 약 먹고 초저녁부터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잤다.


2024.12.03

10시간을 넘게 잤더니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목이 여전히 따갑고 기침은 심했지만 몸살 기운은 가셔서 다행이었다. 출근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를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료가 뜬금없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거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바로 네이버에 들어갔는데 진짜 2024년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네. 미친 거 아니야..? 처음엔 진짜 대국민 몰카인가 딥페이크 인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아무리 사람들이 한국 망한다 망한다 탈조선 탈조선한다지만 대체 대한민국 국민들을 뭘로 봤길래 2024년에 계엄령 따위를 하는지. 이 글은 거의 일주일이 지난 시점인데 탄핵안 투표도 못 이루어진 것도 너무 어이가 없고. 바로 국회로 가서 탄핵 페스티벌을 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남편은 시위가 이렇게 평화로우면 정치인들이 신경도 안 쓰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우리 평화 시위로 대통령 탄핵 시킨 대한민국이야 왜 이래. 한국이 뒤숭숭하니 매일 마음이 불편하다. 


2024.12.04

 4년을 거의 매일 지나가는 길에 있는 동네 슈퍼마켓에 한국 라면과 과자를 팔고 있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크라쿠프를 부러워할 게 아니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매운 새우깡을 몇 개 샀다.

 

기침은 여전히 심하지만 몸이 많이 좋아져서 일주일 만에 운동을 갔다. 요즘 딱 봐도 살이 올라서 몸무게를 재기가 두렵다.


2024.12.05
 
6월 초에 신청한 영주권이 천년만년 걸리고 있다. 이민국에서 일부러 12월까지 결과를 미루고 있는 거라고 내가 가설을 세웠는데 그를 증명하듯 주변에서 하나 둘 영주권 취득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문제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 건 다 나오는데 내 영주권이 안나오고 있다는 점. 나보다 뒤에 신청한 사람 중에서도 결정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대체 내 신청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에이전시에서는 7월에 보낸 서류를 자기들이 빼먹고 다시 달라고 하지를 않나, 월세집 등기부등본을 새로 달라고 하지를 않나. 에이전시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에이전시를 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개인으로 할 걸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미 영주권 취득을 한 사람들과 조건을 비교해봐도 내가 안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아무래도 에이전시 일 처리가 늦은 탓인 것 같다. 

퇴근하고 동료들과 단골 카페에 가서 멀드와인을 마셨다. 재밌게 수다 떨고 놀다가 하나 둘 씩 남편과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는 걸 보며 조금 슬퍼졌다. 남편이 헝가리에 있어도 데리러 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는 집에 가도 계속 혼자라는 게 조금 슬펐다.
하지만 집에 가서 씩씩하게 까르보불닭을 끓여 먹고 빨래도 돌리고 잤다. 역시 나는 순정 불닭이 좋다.


2024.12.06

 
헝가리에서는 12월 6일이 산타가 오는 날이다. 산타의 모티브가 되는 성 니콜라오의 날이라서 그런 듯. 몇몇 헝가리인 동료들이 초콜릿을 챙겨 주었다. 남편 말로는 12월 6일에는 초콜릿만 주고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준다고 한다. 산타가 아주 바쁘네. 그나저나 유럽에서 산지도 만 8년이 넘었고 그중의 반을 헝가리에서 보냈는데 이런 문화를 알면서도 못 챙길 때 참 외국인이구나를 느끼곤 한다.
 
몸살 기운은 일찍이 가셨지만, 기침과 콧물, 가래가 낫질 않아 현지 약도 사보았다. 도리트리친은 스트렙실보다 효과가 좋고 콧물 스프레이는 왜 인생을 30년을 살고서 이제 알았는지. 

드디어 청첩장이 왔다! 소량인데 언어도 두 개로 하고 싶고, 한국어도 포인트로 넣고 싶고 원하는 게 자잘하게 많아서 주문 제작을 알아보다가 결국 직접 만들어 버렸다. 중간에 바보 비용도 지출하고 결국엔 더 비싸진 것 같지만 남편이랑 같이 만든 청첩장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원하던 대로 나왔고 너무 우리 취향. 분명 청첩장 제작 알아볼 때는 받는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라고 기본으로 하자고 했었는데... 이젠 리본 종류별로 사놓고 뭐가 제일 이쁜지 고르고 있음. 이제 진짜 청첩장을 보내야 하는데, 한국 결혼식에 비하면 스몰 웨딩이라 정말 친한 가족과 친구만 초대를 하는데도 초대가 조심스럽다.

오후에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새 비로 변했지만 산이나 교외에서는 눈이 많이 왔다.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산맥을 넘어오는 남편도 눈 때문에 한 시간이나 늦게 왔다. 안 좋은 날씨 때문에 배달 음식 시켜 먹으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부랴부랴 운동 끝나고 장보고 요리하느라 남편 늦는 줄도 몰랐다. 부위는 모르겠고 갈비찜 맛 돼지고기조림. 살코기 만으로 1킬로를 기본으로 하는데 남편이 먹기 시작하면 한 두 끼 만에 사라지고 만다.
 
남편이 내 몸 상태를 보고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내 생각엔 기침이 심한 것 뿐인데... 그런데 남편이 오고 자꾸 말을 하게 되니까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숨이 모자랐다. 평일에는 밤에 말할 일이 없어서 몰랐던 것이다! 남편이 기관지염 같다고 당장 병원 가고 병가 내고 쉬어야 한다면서. 어떻게 이 상태로 계속 출근을 했냐고. (왜 못 해...?) 주말 내 호전이 안 되면 월요일에 병원을 가기로 합의를 했다.
 


2024.12.07


일하는 토요일이다... 헝가리에서는 징검다리 휴일이 있는 경우 같은 달의 토요일에 하루 일을 하고, 휴일에 낀 날을 아예 공휴일로 만들어 버린다. 원래 12월에 공휴일은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인 25일과 26일 뿐이지만 화요일과 금요일인 24일과 27일도 전부 공휴일을 만들어 버리기 위해 첫째 주, 둘째 주 토요일이 일하는 토요일이 됐다. 조삼모사긴 하지만 괜찮은 방법 같다.

저녁에는 결혼식 데코레이터 미팅을 다녀왔다.
가정집이어서 그냥 남편 친척 방문하는 줄. 데코레이터도 이모뻘에 친절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2024.12.08

전 날 미팅을 마치고 참고 할 만한 사진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어서 오전에 다시 핀터레스트와 인스타를 훑었다. 거의 피피티를 만들어서 보냈는데 과연 실현이 될지! 사진 고르며 느낀 점은 돈 오지게 깨지겠다는 생각이었다.

 

남편이랑 나가서 커피 한 잔하고 장보고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기다렸던 위키드 관람. 런던에서 뮤지컬을 엄청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세상에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영화는 재밌었고 남편도 재미나게 봤다. 영화 보기 전부터 오른쪽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불편했다. 알아서 나오겠지 싶었는데 영화가 끝났는데도 눈이 계속 긁히는 기분이 나서 울면서 집에 왔다. 혹시 렌즈 삽입한 게 잘못된 건 아닐까 너무 무서웠는데 다행히 집에 와서 안약에 인공눈물을 퍼부으니 이물질이 나왔는지 고통이 사라졌다.

기침과 가래가 가시질 않는다. 이상하게도 앉아 있을 때보다 누워있을 때 기침을 더 많이 한다. 가래가 문제인 것 같아 가래 약을 샀다. 요 몇일 약에 대체 얼마를 쓰는 건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일요일은 항상 남편이 폴란드로 돌아가거나 내가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날인데 이번에는 남편이 남은 휴가와 재택을 몰아서 한 달이나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벌써부터 한 달 뒤가 걱정되지만 일단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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