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막연히 외국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해외여행도 가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짧게라도 해외로 어학연수, 여행, 등등 다녀오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외국어 잘하는 것도 멋있어 보이고 그랬다. 그래서 어학연수 가고 워홀 가고 하다 보니 해외에서 좀 더 경험 쌓고 싶었는데 항상 궁금했던 게 남들은 어떤 비자로 지내는지 어떤 일 하고 지내는지 어떻게 사는지 너무 궁금했음. 그래서 끄적여 보는 내 해외 알바, 취업 이야기.
1. 해외 첫 알바-카페 바리스타

내 해외 취업은 알바로 시작했다. 런던에 뭐 하나 없이 워홀로 가서 맨땅에 헤딩했던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집도 직장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가서 먹고 살 생각했다니 용감했다. 말이 알바지 런던에서 먹고 살만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알바도 무조건 풀타임(주 40시간)으로 일을 해야했다. 물가가 높은 런던에서 알바 형태의 일들은 시급이 낮기 때문에 투잡 뛰는 사람들도 허다했음. 나는 뭔 배짱인지 영어도 잘 못하면서 외곽에서부터 찾기 시작해서 일을 구하는데 두 달이나 걸렸다. 진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낮에는 이력서를 들고 다니면서 내고 밤에는 온라인으로 아는 회사란 회사는 다 지원했음. 물론 영국회사만... 영국이니까 영국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뭔 객기였나... 싶기도.
첫 알바는 체인 커피숍 Cafe Nero. 한국에서 카페 알바 경험이 있었는데도 관광지에 있어서 그랬는지 정말 힘들었다. 내가 속도로 밀리기는 처음이었음. 두 달 정도 일했지만 바쁜 거랑 별개로 곤란하고 힘든 상황도 많았고 무엇보다 박봉이라... 한 달 뼈 빠지게 일해도 세후 천 파운드를 못 벌어 생활이 힘들어서 기회가 왔을 때 다른 곳으로 옮겼다.
2. 해외 두 번째 알바 - 백화점 식품관


초반 미친 듯이 지원할 때는 조용하다가 뒤늦게 연락이 와 카페를 그만두고 일하게 된 포트넘 앤 메이슨. 런던에 있는 백화점인데 여기도 겉보기에만 좋지 진짜 사람 갈아서 씀. 그래도 카페보다 시급이 조~금 더 높았고 평소에 좋아하던 브랜드라 브랜드에 대한 환상으로 갔는데 운영은 진짜 개판임.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 (실용성 제로) 며칠하고 바로 카운터 투입인데 뭐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 깨우쳐야 했어서 그동안 돈 적거나 많이 낸 고객님들 많았을 거임.... 재고관리나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서 나는 손님들 시식도 자주 하게 해 주고 샌드위치 만들면 재료 왕창 넣어서 혜자 샌드위치 만들어 주고 그랬음. 기대와 달리 전문성은 거의 없고 알바처럼 다니는 애들이 많고 그땐 동료들이 병가를 왜 그렇게 많이 내는지 영국/유럽애들은 참 자주 아프네라고 생각했는데 다 꾀병이었음...! 나만 일하고...! 나도 그냥 놀면서 다닐걸! 좋았던 건 고급 식품을 팔다 보니 비싼 음식 쉽게 맛볼 수 있었던 것... 관리가 잘 안 되니까 가져가진 못해도 일하는 동안은 그냥 집어 먹어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식재료도 많이 접하고. 여기 육포가 진짜 맛있는데 아직도 생각남.
처음 채용 됐을 때 부터 티 카운터에서 일하고 싶었어서 이동 신청 했는데 결국 차일피일 미루길래 퇴사로 끝이 났다. 당시 동료들이 대부분 영국인들이라 그때 영어만 더 잘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정직하게 일만 하느라 힘들었다. 지하에서 일해서 안 그래도 해 짧은 런던에서 하루종일 해 한번 못 보고 살기도 했다.
3. 해외 첫 직장 - 명품 판매직

매장 판매직이었지만 처음으로 직장이라고 부를 만했던 곳. 일했던 매장이 월드 플래그십이라 손님도 동료도 다양해서 재밌게 다녔다. (시간이 지나서 좋은 기억만 남은 건가...?)나름의 고충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짜 재밌게 일했다. 개인 매출에 따라서 바로바로 커미션이 있었기 때문에 일도 열심히 했고. 몇십 명 되는 세일즈 직원 중에 1등 했던 적도 있고 매주 타깃 달성하고 세일 기간에 정신없이 일하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재밌었다. 세일즈가 은근 내 성격에 맞았던 거 같은데 내 인생에서 가장 E로 살았던 때가 아닌 가 싶다. 휴가도 많고 세일 기간만 빼면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거의 두 달에 한 번은 일주일씩 놀러 다녔음.
벌써 그만둔 지 7년이 됐는데 당시 일하던 몇몇 동료들이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런던이라는 특성상(다양성, 다인종) 능력(과 비자)만 있으면 커리어 이어가는 것도 되고 괜찮았음. 같이 일했던 친구들 중에는 럭셔리 리테일로 커리어 이어가서 브랜드 점프하며 몸값 올리는 친구들도 있고 HR이나 다른 사무직으로 커리어 전향하는 친구들도 있고. 단점은 시프트 근무, 여름/겨울 세일 기간에 휴가를 못써서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쉰다는 점. 워홀 비자 만료만 안 됐어도 몇 년 계속 일하거나 다른 브랜드로 옮겨서 커리어를 이어 갔을지도 모르겠다.
4. 한국 첫 직장-명품 판매직
해외 취업 이야기지만 살짝 끼워보는 한국 직장. 다 그만두고 한국 오니까 불안해서 이것저것 찔러보다가 직전 명품 판매직 경험 살려 거의 바로 구한 C사 판매직. 영국이랑 어떻게 다른 지도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난 영국(또는 유럽)에서 하는 명품 판매직이 맞았던 것이지 한국에서 하는 건 전혀 안 맞았다. 난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보여주고 추천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이지 손님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 한국은 확실히 서비스직군은 고객 아래라는 인식이 있음. 런던에서 일할 때는 매니저가 먼저 그런 진상은 손님도 고객도 아니고 안 그래도 살 사람 많으니까 쫓아내도 된다고 했었는데... 한국에선 어떤 손님도 쫓아낼 수 없었다. 매장에서 난동을 부리더라도... 그리고 영국에선 판매직으로 채용됐기 때문에 내 주 업무는 판매랑 고객 관리였음. 간단한 매장 정리도 업무의 일부긴 했지만 그건 내가 손님한테 보여주고 치우는 거라 내가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한국에선 판매직이 영국에선 따로 포지션이 있는 재고관리부터 매니징, VM까지 다해야 했다. 한국인 1명이 런더너 3명 몫은 하는 듯. 근데 나한테는 이게 비합리적으로 느껴졌고, 한국식 직장 문화가 이해가 안 됐던 것도 컸다. 텃세나 군기 같은 것도 있었고 여러모로 오래 일하기엔 나랑 맞지 않아 몇 개월 뒤 퇴사 했다.
5. 이탈리아 소재 한국 여행사
그렇게 C사 1년도 안 채우고 워홀 비자 취득해서 이탈리아로 넘어감. 가기 전에 직장을 구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아서 가서 부딪혀 보자 생각했다. 런던에서 경험이 있었으니 비슷할 거라는 착각을 한 것... 전혀 안 비슷하고 이탈리아어도 못하면서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지금 생각해도 무모했다. 게다가 이탈리아 워홀은 영국 워홀과 비자 타입이 다르고 기간이 1년밖에 안 돼서 일자리 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겨우 밀라노에 있는 한국 여행사에서 일을 구했는데 혹시 몰라 공개된 장소에는 안 쓰려고 했지만 시간도 많이 지났고 뭐... 진짜 내 알바와 직장 생활 통틀어 제일 끔찍했던 곳. 일단 계약서 안 쓰고 일 시킴. 현금으로 급여 주고 계약서 없으니 휴가도 뭣도 없음. 심지어 이탈리아인들도 계약서는 파트타임으로 작성해서 급여 일부는 현금으로 지급함. 가족 회사에 급여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일은 일대로 시킴. 24시간 365일 대응하는 게 필수였던 직업이었고 사건 사고 대응이 진짜 많은 직업이었음. 일 시작하자마자 한국 휴가 갔던 팀장 입국 거부 돼서 한국으로 추방되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일단 투입... 지금까지 알바를 해도 계약서 안 쓰고 일한 적은 없어서 당연히 계약서 쓰겠지 싶었는데 하루 이틀 그냥 지나감... 근데 이게 의도된 악덕이라기보다 당연히 그렇다는 태도라서 놀라웠음. 중간에 이직도 시도했지만 번번이 비자 때문에 미끄러지고... 당시엔 이탈리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울면서 다님. 상사도 전형적인 기분파에 기분 안 좋으면 소리 지르는 건 기본, 막 말이나 인신공격도 서슴없이 해서 같이 다니던 이탈리아 애들도 완전 가스라이팅 당한 상태였음. 내 이탈리아 생활이 힘들었던 건 이 회사의 책임이 8할... 코로나 터져서 그만뒀는데(사실 계약서도 없으니... 그만두고 말고도 없음.) 사장 가족은 전부 한국 들어가고 월급도 반은 챙겨 준다더니 그것도 한두 달 챙겨주고 끊기고 필요한 일 있을 땐 연락하고. 증명가능한 고용 사실이 없으니 정부 지원금은 생각도 못하고 이탈리아 동료들도 계약서 상엔 파트타임이라 그에 상응하는 지원금만 받고... 진짜 몇 년이 지났지만 이 사람들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여기서 같이 일 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여기서 버텼으면 다른 직장은 진짜 식은 죽 먹기라고..ㅋㅋ 진짜 맞음. 여기서 일한 뒤로 확실히 멘탈이 강해지긴 했음.
내가 대책 없고 무모했던 탓도 있고 능력이 없는 탓도 있을 거고 재수가 없었던 것도 있었겠지만 이탈리아에서 계약서 안 쓰고 일하는 경우가 꽤 많다. 나는 그나마 경제상황이 나은 밀라노에 있었는 데도 주변에서 들어 본 바, 현지인조차도 대기업이나 이름 있는 기업이 아닌 이상 계약서를 제대로 써주는 회사가 잘 없다고 했다. 최저 시급도 없어서 경력이 없고 인턴이라면 심지어 대기업이라도 달에 천유로도 못 받는다고 들었다. 이탈리아 청년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나아졌길.
6. 한국 회사 헝가리 법인
이탈리아 여행사 근무환경이 진짜 심각한 수준이었기에 어딜 가도 만족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직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일했던 거 생각하면 여긴 극도로 정상적인 한국 회사다. 가장 좋았던 건 취업 비자가 나오는 것. 영국, 이탈리아에서 가장 서러웠던 게 비자 문제였다. 취업이 가능한 비자를 알아서 취득했어야 했기 때문에 비자 걱정 없이 체류가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였다. 이미 해외 소재 한국 회사에 대한 특성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고(아주 극단적으로...) 나도 어느 정도 그게 필요했기 때문에 적응이 빨리 됐음.
다만 회사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한국회사에서 일하면 한국에 있는 회사라고 생각하고 다니는 게 좋다. 별로라는 건 아니고 외국에 있다고 해서 크게 자유롭고 수평적이고 그런 느낌을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회사는 회사다. 우리 회사는 그래도 많이 챙겨주고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경험에 따라 견해가 나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첫 직장이 해외에 있는 한국 기업이면 기대가 커서 힘들어 할 확률이 높고 나처럼 구를대로 굴렀다면(?) 잘 만족하고 다니기도 하고... 영국에 있을 땐 굳이 해외에서 왜 한국회사에서 일하지 싶었는데 이제는 외국에서 한국 회사 일하는 거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어느 나라인지 어떤 회사인지에 따라 다름.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인 동료들이 있으니 서로의 고충과 노고를 알아준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한국과 현지의 사내 외 각종 문화 차이를 좁혀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해외에서 일한 다는 게 겉으로는 멋있어 보일 수도 있는데, 과거의 나처럼 겉만 보고 해외 취업, 해외 삶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와서 부딪혀 보니 참 해외에서 일하고 산다는 것은 그저 현실이고 많은 환상과 거품이 끼여 있구나 몸소 느꼈달까.(나만 환상 가진 거 아니지...) 특히 이탈리아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초반 3개월 정도까지 마음가짐과 그 이후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많이 봤다. 예를 들면 막 왔을 때는 한 2-3년은 살아보려고요! 했다가 3-6개월 되면 그 기간이 반토막이 나버리는... 이탈리아가 녹록지 않긴 하지.

생각해 보면 같은 나라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만 가도 외로운데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건 레벨이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뭐 내 발로 와서 힘들다 하소연하고 투정을 부리고자 하는 건 아니고,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고 생각보다 매일 핑크빛은 아니라는 걸 적어보고 싶었다. 물론 여기 있어서 좋은 순간이 아직 더 많기에 정착해서 살고 있지만 그것 또한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고 일상은 그냥 직장인임. 매일이 똑같음. 일 집 일 집. 운동 좀 하고 취미 활동하고 가끔 친구 만나고 다 그런 거임.
그래도 해외 취업이 하고 싶다면, 해외 살아 보고 싶다면 일단 해보라고 하고 싶다. 했는데 아니다 싶으면 그때 돌아가도 되고 나라를 옮겨도 된다. 나도 해봤고 하고 있으니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지 실행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계속 마음 한편에 후회를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20대 동안 4개국을 떠돌며... 일반적인 삶과는 다소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종종 불안함을 겪을지 언정 후회는 없다. 혈혈단신 처음 영국으로 갈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성격이 참 많이 달라졌는데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생각이 있다. 그냥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을 거 아니라면, 뭐라도 한다면 뭐라도 될 거라고. 그렇게 뭐라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는 뭐라도 하면 돼라는 삶보단 계획적인 삶을 살고 싶지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이 원동력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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