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라이프/부다페스트 일상

주간 일기 : 헝가리-폴란드 주말부부 일상과 생각들

_oneday_ 2025. 2. 2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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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7.

아침에 여느 날과 같이 엄마와 통화를 했다. 지난 주말 이야기를 하며 시댁 어르신들이 너무 잘해주시지만 그럴 때마다 더더욱 한국에 있는 가족이 그립고 우리 부모님과는 시간을 많이 못 보낸다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투정 부리듯 불공평하다고 했는데 엄마의 답이... "불공평..?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네가 거기 살고 있으니 (그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는 건) 당연한 거지~"... 아차차... 우리 엄마 세상 쿨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또 한 번 본받을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밤에 떠나는데도 저녁 운동을 미루거나 취소하지 말라고 하는 남편 덕에 퇴근하고 운동을 갔다. 저 사람은 울 남편은 아니고 피티쌤... 올해 피티에서 독립하기가 목표다. 피티를 하면 운동이 다양하고, 루틴도 안 짜도 되고 혼자 할 때보다 강도도 높고 더 한계로 물아 붙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돈이 많이 나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랄까.
 
그나저나 평생 운동이란 것과 담을 쌓고 살다가 헬스 만 3년 만에 드디어 웨이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3년이나 걸렸다는 건 피티선생님의 역량 부조...ㄱ....이라고 하기엔 나도 피티 하는 게 어디냐는 안일한 마음으로 딱히 운동을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피티 선생님 탓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여하튼 3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살면서 운동을 이렇게 꾸준히 한 게 처음이라(물론 중간에 눈 수술이라던가... 휴가라던가.. 해서 한 두 달 소홀한 적은 있지만.) 스스로가 대견하고 신기했다. 아직 큰 목표인 자세 교정이라던가 승모통증은 아직 갈길이 멀지만 눈바디도 많이 변했고 근육이 많이 붙어서 이 느린 변화가 마음에 든다.
 
운동하고 남편이랑 잠깐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남편이 다시 폴란드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남편이랑 있으면 원래도 시간이 빨리 가는데 주말부부를 하고부터는 순식간이다. 남편을 배웅하고 빠르게 잠에 들었다. 


2025.02.18.
 


벌써 2월 중순이다. 2월은 28일까지 밖에 없으니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 길어지는 해를 실감하는 중. 이번 겨울은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은데 남편은 올 겨울이 참 길다고 했다.

퇴근 후 저녁 먹고 마사지를 받았다. 남편이 선물로 준 마사지라 그런지 평소보다도 더 시원했다.



2025.02.19.
 

일하고 운동하고 밥 먹고 뜨개 하고. 일기이긴 하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내 모든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얼마나 자가검열(?)을 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되고, 맘 편히 적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니 맨날 운동, 뜨개... 그리고 먹은 거 이야기라서 재미가 없는 거 같기도 하다. 뭘 써야 재밌을까. 읽는 사람들은 무엇이 궁금할까!(읽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ㅋㅋ)



2025.02.20.

 

오랜만에 회식을 했다. 헝가리 인들도 함께 하는 자리라 더욱 재미있었다. 몇 년을 같은 회사에서 일했지만 따로 이야기 나눠본 적 없는 직원이 내가 런던에서 지낼 때 런던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사는 동네도 가까웠고 생활 반경도 비슷했어서 진짜 세상 참 좁다는 걸 느꼈다. 



2025.02.21.

몇 주 연속 폴란드와 헝가리를 오가는 남편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번 주는 내가 폴란드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딱히 사먹을게 버거킹 밖에 없어서 항상 버거킹을 먹는데 위장 기능이 또다시 오락가락한다. 좀 건강하게 먹어야겠다고 다시 다짐. 오후 내내 졸리더니 버스에서도 꿀잠을 잤다. 웬일로 스케줄보다 빨리 도착해서 남편을 30분이나 더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워홀 시절부터 인스타 피드를 쭉 훑었는데 그중에 행복의 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 행복할 때 모든 근심 걱정은 잊고 행복을 한계까지 즐기라고 적은 글을 보았다. 내가 이런 걸 적었단 말이야. 블로그만 해도 몇 년 전에 써놓은 걸 보면 감회가 새롭다. 그러면서 사진을 쭉 보는데 참… 지금이랑 확실히 보는 시각이 달랐다. 어딜 가도 훨씬 새롭고 설레었는데. 아마 그때는 유럽에서 산다는 것이 일시적인 상태라고 생각해서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다녀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이제 한국보다 유럽의 삶에 더 익숙해져 더 이상 새로운 시각으로 이 땅을 바라보게 되는 빈도가 이제 현저히 낮아졌다. 


2025.02.22.

매주 다시 만나지만 재회의 기쁨에 보통 금요일은 늦게까지 깨어있곤 한다. 나의 제안으로 '카산드라'라는 독일 넷플릭스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흥미진진...! 조금 허술하지만 긴장감 있는 스토리에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토요일 아침은 남편 표 건강식 아침… 크라쿠프만 오면 뭔가 음식에 대한 갈망이 강해진다. 남편 식단으로 먹으면 너무 건강해서 그런가...저녁 약속이 있어 일찍 나와 남편과 커피 한잔 하며 안건강식에 대한 욕구를 채웠다. 

저녁 약속은 남편 동료/친구들과 함께 였는데 그들이 고른 저녁 장소는 바로 라멘집…근데 난 라멘을 별로 안 좋아한다… 다국적 모임이었지만 나만 빼고 전부 유럽인이었는데 한 폴란드인이 여기서 라멘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지?라며 나를 쳐다보는 거다. 아니 내가 동양인이라고 모든 동양 음식을 잘 알 거라는 편견은 버려줄래..? 나는 시선을 피했고 (실제로 라멘을 잘 모름) 남편은 웃음이 터졌다. 사실 이 동료는 일전에 남편에게 한국 음식은 지루하고 맛이 없다고 했다는. 그때는 남편에게 한국인 와이프가 있는 걸 몰라서 그랬다고 이해해 주긴 개뿔. 타 국가 식문화를 본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까내리다니. 그 자리에서도 자꾸 이탈리아인 친구에게 아페롤 스프리츠(이탈리아 대표 칵테일!)는 맛이 없는데 왜 이렇게 마시는 거냐, 부라타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이탈리아에도 폴란드 디저트와 비슷한 디저트가 있다, 했는데 그래도 폴란드께 더 맛있지?라고 하는 등 타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자꾸 보였다. 이탈리아인은 음식 건드는 것에 유독 예민해서 쟤가 미쳤나...라고 생각했는데 이탈리아인 친구는 어이없어했지만 별로 상종을 안 했다. 나였으면 너 아주 잘 걸렸다 하고 씹고 뜯었을 텐데 그냥 병먹금 하는 쿨함을 배웠다. 하긴 그런 애들은 상대를 안 하는 게 최선이다.

 

다행히 12명이나 되는 큰 모임이었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재미있었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향적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서 외향적인 문과의 시선에서는 애들이 전부 순수부끄 똑똑이들이지만 동시에 뚝딱이 같았달까... 다들 과고영재 같은 그런 느낌? 


2차로는 뜬금없이 테크노 클럽에 갔는데 나름 재밌었다. 하지만 요즘 술이 좀 안받는 거 같아 술을 안 마셨더니 제정신으로 클럽에서 놀기는 빠르게 한계에 부딪혔고 최고령자로서 체력이 달려 일찍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기전 케밥… 역시 놀고 나서는 케밥이지. 크라쿠프에서는 카지미에시라고 하는 구역에 가장 젊은이들이 많이 놀러 나간다. 여기는 카지미에시에서도 케밥이나 자피에칸키처럼 술 먹고 간단하게 끼니 때울만한 곳들이 있는 곳이다.

집에 오니 머리카락이 클럽을 통째로 옮겨온 듯한 엄청난 냄새가 나서 씻고 케밥 먹고 카산드라를 이어서 봤다. 손에 땀을 쥐는 스토리에 깨어있으려고 했으나 정신 차리니 자고 있었다고 한다.


2025.02.23

남편표 건강 아침상 2… 내가 호텔 조식처럼 실키한 스크램블드 에그가 좋다고 한 뒤로 그렇게 해준다.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나는 기본적인 계란 후라이나 스크램블드 에그를 잘 못하는 편이라 이건 남편 전담이다. 비상식량으로 쟁여둔 마라탕맛 컵누들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요즘 다시 커피에 중독되어 커피 마시러 너무 나가고 싶었지만 집밖에 한 발자국도 안 나간 적이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안 나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정도 게으르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종일 자고 먹고 폰 하고 자고 먹고….

 

그리고 주중에 주말에 스테이크 먹고 싶다고 했더니 스테이크 사놓은 남편. 이렇게 쓰니까 갑자기 우리 남편 자상한 거 같은데 자상한 거 같다. 왜인지 스테이크는 내가 더 잘 구워서 실력 발휘를 해봤다. 내가 봤을 땐 식당에서 먹는 거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신랑이 만족하는 걸로 충분하다. 곁들여 먹을 컬리플라워도 잔뜩 구웠는데 사진이 없다. 이번에 스테이크가 역대급으로 잘 구워져서 스스로 너무 만족스러웠다.

 

헝가리로 돌아 가야해서 밤에 나와야 했지만 그걸 빼고는 하루종일 집에서 보낸 하루였다. 잠을 그렇게 잤는데도 오는 길에 역대급 꿀잠을 자며 또 한주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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